강원 답사보고서_ 1. 백룡동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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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백룡동굴의 위치 |
백룡동굴 가는 길은 굽이굽이 멀기도 하다. 평창까지 세 시간 남짓 달려 백룡동굴이 위치한 미탄면에 도착했다. 동굴 근처에 다다르자 갑자기 도로가 1차선으로 좁아졌다. 지도 어플을 켜서 위치를 확인하니 정확하게 가고 있었다. 맞은편에서 오는 차가 있으면 잠시 구석으로 멈춰가며 그림 2에 보이는 좁은 도로를 따라 굽이쳐 흐르는 강을 거슬러 올라 백룡동굴 방문자센터에 도착했다. 간단한 신상기록과 서약서를 작성한 뒤 동굴에 들어갈 탐방복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500m쯤 나루터까지 걸어간 뒤 배를 타고 동굴 입구에 도착했다. 과거에는 절벽을 따라 탐방로를 통해 동굴에 접근했는데 낙석 위험 때문에 지금은 배를 타고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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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백룡동굴 안내센터로 향하는 1차선 도로 |
백룡동굴은 접근하기 참 어렵다. 그 덕분이지 백룡동굴은 보존상태가 국내 어느 동굴보다 양호하다. 서무송(1998)에 따르면 백룡동굴은 두 가지 이유에서 접근성이 낮다. 첫 번째는 앞서 언급한 백룡동굴의 위치 때문이다. 백룡동굴은 감입곡류하천의 공격부분에 형성된 하식애 중간쯤에 동굴 입구가 있다. 그림2와 같이 굽이쳐 흐르는 하천을 따라 안내센터에 도착한 뒤에도 배를 타야지만 접근할 수 있다. 두 번째는 동굴 내부의 구조다. 백룡동굴은 인근 지역 주민들에겐 널리 알려진 장소였다. 동굴입구에는 조선시대에 거주했던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온돌 유적도 있다. 동굴은 연중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고 비바람을 피하기에도 유리한 곳이다. 집을 짓는 기술이 발달하기 전 인류는 동굴 거주를 선호했다. 그런데 지역주민인 백무룡씨가 ‘개구멍’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동굴 내부의 거대한 공간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림 3의 개구멍 뒤에 있는 공간은 비교적 최근까지 미지의 상태로 있었다. 사람들에게 알려져 출입이 가능했던 동굴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동굴생성물들이 잘 보존될 수 있었던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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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개구멍(Narrow Passage)의 위치와 실제 통과하는 모습 |
백룡동굴은 동굴 보호를 위해 사전 예약제로 운영되며 해설사와 동행해야면 입장이 가능하다. 안내센터에서 나눠준 옷과 장화를 착용하고 개인 소지품은 일절 반입 금지다. 종유석, 석순과 같은 동굴생성물(스펠레오뎀)을 사진으로 담아 오고 싶어 작은 카메라와 삼각대를 준비해 갔으나 이마저도 반입 불가였다. 해설사에게 이야기를 들으니 20명 남짓으로 구성된 탐방그룹에서 하나둘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 탐방이 지체되기 시작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것 외에도 사진사들이 가지고 온 삼각대가 동굴의 다양한 미지형들을 파괴할 가능성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도 해설사께서 중요한 포인트마다 인증샷을 남겨 주시고 동굴생성물 사진도 찍어주셔서 아쉬움이 조금은 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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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백룡동굴의 동굴생성물 |
동굴에는 종유석, 석순, 석주, 림스톤 폰드, 유석 등 지형학 교과서에서 보던 다양한 동굴생성물이 보존되어 있었다. 동굴이 협소에 탐방 과정에서 동굴 미지형과 부딛힐까봐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석회암은 물속에 포함된 탄산가스에 쉽게 용해된다. 고온다습해 식생이 풍부한 토양은 탄산가스가 물에 녹아들기 좋은 조건이다. 석회동굴은 원래 지하수가 흐르던 통로였다. 지하수위가 내려가고 동공이 생기면 2차 생성물인 동굴생성물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석회암의 성분인 탄산칼슘을 잔뜩 머금은 물이 동굴 내부로 스며나오기 시작하면 외부공기와 반응하여 탄산카스가 먼저 날아간다. 탄산음료 뚜껑을 개봉하면 탄산가스가 공기중으로 노출되듯이 수분에 함유된 탄산가스의 농도가 낮아진다. 그러면 수분이 머금을 수 있는 탄산칼슘의 양이 줄어들어 탄산칼슘이 침전되기 시작한다. 이러한 과정에으로 동굴생성물이 만들어진다. 그림 4에서 A에는 종유석, 석순, 석주가 잘 나타난다. 천장에서 조금씩 떨어지는 물방울을따라 위에서 아래로 성장하는 종유석과 바로 아래에서 천장 부분으로 성장하는 석순, 종유석가 석순이 만날 경우 석주라고 한다. B는 유석으로 절리와 같이 갈라진 틈을 따라 물이 스며 나올 경우에 석회석이 마치 흐르는 모양으로 침전되어 만들어진다. C는 베이컨시트로 동굴 천장의 물이 빠르게 이동할 때 흐르는 길을 따라 얇게 형성된 침전물이다. D에도 종유석, 석순, 석주가 잘 나타난다. E는 석수인데, 일반적인 석순과 달리 달걀후라이 모양을 하고 있어 에그프라이 석순이라고 부른다.
보존이 양호한 동굴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동굴 내부 곳곳에는 잘려나간 동굴 지형들이 여럿 있었다. 해설사는 부주의한 탐방객들이 실수 또는 고의로 훼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했다. 인간의 개입 외에도 지진이 나거나 큰 바람이 불면 동굴생성물에 균열이 가거나 무너져 내릴 수도 있다고 했다. 답사 후에 해설사의 이야기에 근거해 관련 글을 찾아보니 실제로 이를 활용해 과거의 지진을 연구하는 분야도 있었다. 최진혁 외(2012)는 석회동굴 내 동굴생성물의 파괴특성을 이용해 고지진을 연구했다. 고지진학은 과거의 지진을 나타내는 자료를 기반으로 지진을 예측하는 학문 분야이다. 동굴생성물은 50만년 전까지 정확한 연대측정이 가능하다. 동굴생성물의 파괴특성을 연구해 지진으로 무너진 것이 확실하다면 이를 기준으로 과거에 지진이 일어난 시점을 밝혀낼 수 있다. 해설사께서 자신 없는 듯 흘러가며 해주신 이야기들이 답사보고서를 작성하며 관련 글을 찾아보니 대부분 근거가 있는 것들이었다. 실제로 백룡동굴의 해설사분들은 주기적으로 대학과 연구기관에서 재교육을 받으며 동굴과 관련된 내용을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해설사는 종유석에 생긴 나이 태와 같은 줄무늬도 설명해 주셨다. 이는 계절적 강수량의 변화가 큰 한국의 기후와도 관련이 있어 보였다. 실제로 조경남 외(2005)는 동굴생성물에 기록된 기후 정보를 통해 5년간의 몬순기후 변화를 밝혀내기도 했다. 종유석, 석순, 석주 등 동굴생성물에는 만들어질 당시의 기후, 지진 등의 정보가 담겨있다.
백룡동굴 내부에는 상시조명이 없다. 마지막 탐방코스인 ‘대형광장’에만 버튼을 통해 제어되는 조명시설이 있다. 개인이 휴대한 조명기구를 다 끄니 눈을 뜨고 있어도 감은 것과 차이가 없었다. 빛이 한 줄기도 들어오지 않는 완전한 상태의 어둠이었다. 해설사께서 부분부분 조명을 점등해 설명을 해주니 극적인 효과가 연출되었다. 그런데 상시조명을 설치하지 않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조명이 동굴 벽면을 지속적으로 비추게 되면 이끼가 자라나기 시작해 초록색으로 변한다고 한다. 동굴 내부를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조명시설 설치에도 주의가 필요했다. 조명시설 덕분에 관찰이 편한 다른 석회동굴은 어떤 관리가 이뤄지고 있을지 궁금했다. 동굴을 빠져나오자 입구에는 초록색 이끼가 자리잡은 벽면이 있었다. 동굴 내부의 습기와 태양빛이 만나 초록색 이끼가 자라난 것이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런데 동굴 내부에 조명이 설치된다면 이끼가 없어야 할 곳에 이끼가 자라나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해치게 될 것이다.
<참고>
서무송, 1998, 동강 유역의 석회암 동굴에 관한 연구 - 백용 석회암 동굴의 2차생성물을 중심으로 -, 한국지형학회지, 5(2), 143-159
이종희, 2017, 백룡동굴 개방이 동굴 내 대기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 강원대학교 일반대학원 지질학과 석사학위 논문
조경남·우경식·홍기훈·석봉출·박병권, 2005, 동굴생성물에 기록된 최근 5년간의 동아시아 몬순기후 변화, 대한지질학회 학술대회, 190-190
조재남·조경남, 2017, 강원도 평창군 백룡동굴에서 산출되는 종유관의 기재학적 연구, 한국지구과학회지, 38(1), 64-79
최진혁·고경태·김재윤·김영석, 2012, 석회동굴 내 동굴생성물의 파괴특성을 이용한 고지진 연구, 지질학회지, 48(3), 225-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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