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반도 답사보고서 _ 신두리 해안사구
신두리 해안사구는 이번 답사의 목적지였다. 처음 답사 계획은 이곳만 둘러보고 돌아올 계획이었다. 학부 시절 이곳을 두 세 차례 들렀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남겨놓았던 답사 사진들을 관리 소홀로 모두 잃어버려 수업자료를 만들고자 다시 신두리 해안사구를 찾았다. 해안사구는 해안 퇴적 지형이다. 해안사구의 퇴적에는 파랑, 조수와 같은 바닷물의 흐름과 바람의 침식, 운반, 퇴적 작용이 모두 관여할 수 있다.
서종철(2010)에 따르면 2007년에 있었던 태안 기름유출 사고는 신두리 해안사구의 형성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당시 유출된 기름이 해안사구로 유입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울타리를 사구 전면에 설치했다. 울타리는 동시에 바람에 날리는 모래를 잡아두는 모래포집기의 역할을 했다. 기름 유입을 막으면서 사구까지 성장시키는 역할을 동시에 해낸 것이다. 학부 시절 이곳을 방문했을 때 사구 전면의 울타리를 여럿 관찰했다. 그 울타리들이 이러한 연유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방문하니 울타리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때 심었던 울타리는 사구의 성장으로 모두 모래 속에 묻혀 있다고 한다. 그 때문에 울타리의 재료가 중요하다. 한 번 묻힌 울타리를 다시 꺼내는 작업은 사구를 다시 파괴하고 추가적인 비용까지 발생하기 때문에 사구 내부에서 자연적으로 썩어들어 가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래서 대나무형 사고 울타리가 환경을 고려했을 때 적합하다. 그런데 당시는 오염물질의 이동을 막는 게 급선무였기 때문에 급한 대로 그물형 울타리를 제작해 설치했다. 그물은 대부분 화학물질이라 부식이 잘되지 않는 단점이 있다.
홍성찬⋅최정헌⋅김종욱(2010)은 GPR 탐사와 OSL 연대측정을 활용해 신두리해안사구의 퇴적 과정을 연구했다. 황해는 최후빙기 시기 전체가 육지였다. 이후 해수면이 상승하고 지금 상태로 안정된 상태에서 파랑의 작용으로 형성된 퇴적지형들은 비교적 가까운 시기에 형성된 젊은 지형이다. 신두리 해안사구는 기반암 특성, 사퇴의 존재, 겨울철 북서계절풍 등이 어우러져 만들어졌다. 태안반도 일대는 많은 모래를 공급할 수 있는 대규모 하천은 없지만, 주변 지역의 기반암이 편암, 편마암, 규암 등으로 이루어져 있어 어느 정도 모래 공급이 가능하다. 그리고 인근 바다에 대규모 사퇴가 존재해 파랑에 의해 사빈에 모래가 공급될 수 있다. 이렇게 쌓인 모래는 주로 겨울철에 북서계절풍의 힘으로 바람에 날려 풍성퇴적층인 사구를 형성한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인간의 개입이다. 서해안 일대에는 신두리해안사구 말고도 대규모의 사구가 여럿 존재했다. 많은 사구고 건설용 모래 채취로 파괴되었다. 그런데 신두리는 비교적 최근까지 군사보호지역으로 분류되어 개발과 민간인의 접근이 차단되었다. 마치 DMZ가 세계 최대의 온대림을 보유한 생태 지역으로 바뀐 것처럼, 신두리 해안사구도 군사 보호지역이었던 것이 자연환경에는 도움이 되었다.
GPR 탐사는 짧은 주파수의 라디오파를 이용해 퇴적층의 구조를 알아내는 탐사기법이다. 신두리해안사구를 탐사한 결과 해안사구가 육지에서 해안 방향으로 성장했음이 밝혀졌다. OSL연대측정을 통해 실제로 해안사구의 퇴적 시기를 알아보았더니 육지에 가까워질수록 오래된 사구 퇴적층임이 밝혀졌다. GPR탐사와 OSL연대측정의 결과가 서로 일치했다. 신두리 해안사구는 전사구, 사구저지, 후사구로 이뤄져 있다. 후사구의 규모가 전사구보다 크다. 이곳은 약 3700~6700년 전 사이로 추정되는 고해면기 이전에 형성된 지형으로 한 번 파괴되면 되돌리기 힘든 지역이다. 사구는 사구식생이 자리 잡으면 지형이 안정된다. 반대로 사구식생이 파괴되면 빠르게 지형 변화를 겪는다. 때문에 신두리해안사구에 탐방로를 설치하고 관광객들의 출입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과거에 글쓴이가 방문했던 때만 해도 관광객의 출입을 막는 구조물이 존재하지 않았다.
오래전 기억이라 분명하진 않지만, 예전에 왔을 때 보다 후사구가 더 많이 파괴된 모습이었다. 후사구의 전면부에는 다시 모래를 퇴적시키기 위해 설치한 모래포집기들을 여럿 관찰할 수 있었다. 식생이 없는 지역에는 모래가 그대로 노출되고 점차 침식이 일어나는 모습이 여러 군데 보였다. 분명 출입이 통제된 지역인데 후사구 곳곳에 보이는 사람들의 발자국에 안타까운 마음이 크게 들었다.
신두리 해안사구 답사를 끝내고 두웅습지로 향했다. 이곳 앞에 있던 안내판에서 두웅습지 형성과정을 공부했다. 안내판에는 사구가 해안 방향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두웅습지가 만들어졌다고 설명되어 있었다. 당시에는 정말로 그런걸까? 겨울철에 공급되는 모래로 육지방향으로 모래가 날려 해안사구가 성장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신두리 해안사구의 형성 과정에서 북서계절풍의 역할이 머릿속에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답사를 다녀온 뒤 관련 문헌을 다시 읽으면서 안내판의 내용이 정확했음을 확인했다.
참고
서종철, 2010, 사구울타리 설치 후 해빈과 전사구의 지형 변화 – 신두리 해안사구를 사례로, 한국지형학회지, 17(1), 85-93
홍성찬⋅최정헌⋅김종욱, 2010, 홀로세 중기 이후 신두리 해안사구의 성장: 기후변화 및 해수면 변동과의 관련 가능성, 한국지형학회지, 17(2), 87-98
기타 신두리해안사구 사진
전사구에 위치한 데크에서 바라본 해빈과 사구
사구식생의 정착으로 뚜렷하게 구분되는 전사구
모래포집기의 역할
후사구 육지쪽 모습
두웅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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