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교육으로 만드는 마을 공동체' 직무연수 후기 _ 1교시
마을과 지리교육과 관련된 강의를 해달라는 제안을 받고 처음에는 부담 없이 생각했습니다. 지난 지리환경교육학회에서 내가 사는 지역을 주제로 진행했던 발표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발표문을 조금 가다듬어 선생님들 앞에 소개하면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스케줄러에 강의 날짜만 표시하고 바쁜 하루하루가 지났습니다. 그러던 중 지리교육으로 만드는 마을공동체 직무연수를 안내하는 문자를 받고 당황했습니다. 한 시간인 줄 알았던 강의가 알고 보니 두 시간이었기 때문이죠.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집합 연수에 주말 시간을 할애해 참여할 만큼 열의가 넘치는 선배 선생님들 앞에서 수업을 주제로 강의를 한다는 게 가능은 한 일일까 고민에 빠졌습니다. 이번 강의는 저에게 큰 도전이었습니다.
강의의 전반적인 흐름은 박남기(2017)의 『최고의 교수법』을 참고했습니다. 책에서 알려준 대로 강사 소개를 하고, 약속계획서를 제시하고, 선생님들의 생각을 자극할 여러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먼저 저를 처음 만날 선생님들을 위해 저의 주된 관심사를 알려드리며 저를 소개했습니다. 저는 학생들의 배움, 지리답사와 사진에 관심이 많은 초년생 지리교사입니다. 약속 강의계획을 통해 세 가지를 선생님과 함께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첫째, 다양한 활동을 통해 지루하지 않게 강의들 진행하겠습니다. 둘째, 강의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최대한 많은 것을 얻어갈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셋째, 이번 시간을 통해 저도 함께 성장하겠습니다. 다음으로 강의 방법을 안내했습니다. 이번 강의는 '학습을 위한 글쓰기'와 '그림으로 사고하기'에 기반을 둔 활동식 모둠학습으로 진행했습니다. 저의 주도적인 역할이 필요한 부분에는 선생님들의 이해를 도울 수 있는 비유, 사례 등을 덧붙인 설명식 수업도 함께 이뤄졌습니다.
7차 교육과정 이후 구성주의는 교육과정을 뒷받침하는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아 왔습니다. 구성주의는 현대문명의 비인간화를 비판하며 등장했습니다.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전한다고 한들 그 안에 인간이 없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구성주의에서는 인간의 가능성과 잠재력에 관심을 가집니다. 따라서 구성주의에 기반을 둔 교육은 학생들의 자아실현을 교육의 목적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아실현을 위해서는 자신에 대한 긍정적 정체성 형성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자존감이 낮고 자신에 대해 부정적 인식이 강한 학생들은 무언가를 시도할 동기조차 부족하기 때문이죠. 비고츠키의 사회문화적 구성주의에 기초한 학습은 학생들이 자신감을 얻어가는 방법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은 근접발달영역 내에서 교사 또는 유능한 동료와의 상호작용으로 지식을 습득합니다. 성공적인 지식의 습득은 자신감으로 이어집니다. 자신감이 누적되어 나도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정체성이 형성됩니다. 이처럼 구성주의에서 학습의 핵심은 능동적 지식구성과 주관적 의미부여입니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두 가지 내용은 지리교과에서 핵심으로 다루는 어떠한 주제와 연관이 깊습니다. 바로 장소감입니다. 이 때문에 구성주의에서 지리교육의 목적은 장소감 형성이 될 수 있습니다. 학생들의 장소감 형성을 위해 지리교육의 내용은 학생들이 경험하는 학습자의 생활세계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본 강의의 제목을 생활세계와 지리교육으로 설정했습니다. 생활세계를 다른 말로 부르면 마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죠. 사실 이 생각은 저의 것이 아닙니다. 권정화(2015)의 '지리교육학 강의노트'에 상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강의를 준비하며 의문이 하나 들었습니다. 정체성 형성이 장소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생각은 지리를 공부하는 사람들만 동의하는 것은 아닐까 궁금했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서는 안 되니까요. 그래서 권정화 교수님께 앞의 내용을 질문드렸습니다. 교수님께서는 프리드리히 볼노우(2011)의 인간과 공간을 소개해 주시며 서양철학에서도 장소 기반의 정체성 형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볼노우 사후에도 그의 제자들을 통해 장소와 정체성에 대한 글이 생산되고 공유되고 있었습니다. 장소에 기반을 둔 정체성 형성을 더욱 쉽게 설명하기 위해 제 경험을 소개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겪었던 기술 교과 수행평가를 이야기하며 제가 사는 집에 대한 부정적 장소감이 학교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이야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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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키운 장소 활동지를 작성하는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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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키운 장소로 광화문을 소개하는 서정현 장학사님 |
이후 한희경(2013)의 '장소를 촉매로 한 치유의 글쓰기' 논문을 참고한 '나를 키운 장소' 활동을 선생님들과 함께했습니다. 활동지는 두 가지 항목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먼저 지금의 나에게 큰 영향을 준 장소를 떠올리고 그곳에 대한 본인의 추억, 생각 등을 자유롭게 서술합니다. 다음으로 글로 떠올린 생각을 간단한 스케치를 통해 그림으로 표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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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선생님의 나를 키운 장소: 사범대 앞 등나무 벤치 |
A 선생님을 키운 장소는 사범대 앞 등나무 벤치입니다. 선생님은 평소 내성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선생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불 밖은 위험해'에 딱 들어맞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대학 진학 후 내성적인 모습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합니다. 아늑하면서도 확 트인 사범대 앞 등나무 벤치에서 선생님은 과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수업 땡땡이도 치고, 가끔은 진지한 토론도 합니다. 선생님은 등나무 벤치를 통해 바깥세상으로 조금씩 나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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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선생님의 나를 키운 장소: 마케팅회사 사무실 |
B 선생님을 키운 장소는 임용을 접어두고 4년 반이나 근무했던 마케팅회사 사무실입니다. 당시는 19명이라는 처참했던 TO와 함께 예비지리교사에겐 암흑기가 시작되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마케팅의 ‘마’자도 몰랐지만 패기와 호기심 하나로 무작정 일을 시작합니다. 마케팅회사 사무실에서 선생님은 고객사 응대, 생소한 용어들, 사무 에티켓, 갑을관계, 데드라인, 보고서 작성, 전화예절, 회식 등 정말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일이 아닌 것에 이렇게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데드라인이 다가올 때면 야근을 일상처럼 하는 것에 퇴근 후 참 많이 울었다고 합니다. 내가 원하는 삶을 찾기 위해 퇴사를 했습니다. 임용 준비를 하며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니 힘들었던 마케팅회사 사무실에서의 경험이 다 나의 인내력과 내공이 되어 임용 공부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고 회상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알게 모르게 장소에 기반을 둬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만난 학생들은 자신이 자라난 장소에 대해서 부정적 인식이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남원은 지방 소도시입니다. 이곳에서 자라난 학생들은 자신들의 장소를 떠올리며 인구가 감소하는 소멸위기의 도시, 내세울 것이 마땅히 없어 목기나 추어탕 정도를 홍보 도구로 사용하는 곳으로 자신들의 장소를 인식했습니다. 사람들의 관계는 첫인상에서 판가름 난다고 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유독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어디서 왔냐는 질문을 많이 합니다. 자신이 자라난 장소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은 첫 만남에서부터 자신감이 모자랄 가능성이 큽니다. 반대로 긍정적인 장소감을 가지고 있다면 내가 자라난 장소를 자신 있게 소개할 수 있겠죠. 이를 토대로 더욱 적극적인 인간관계를 맺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학생들의 남원에 대한 부정적인 장소감을 개선하기 위해 남원의 지리적 가치를 공부하기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지역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학문은 지리학이라는 자신감도 있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했을 때 새롭게 사귀는 친구와의 만남에서 어디서 왔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이러이러한 남원에서 왔다고 자신 있게 소개하길 기대했습니다.
첫 발령을 남원으로 받아 저의 남원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지리공부를 하며 남원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는 정도였지 저에게도 남원은 생소한 곳이었습니다. 강의원고를 작성하기 위해 지난날을 되돌아보니 저의 신규 첫 3년은 남원을 이해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먼저 초임 교에서 만난 동료 선생님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선생님은 봄가을을 중심으로 남원 인근에 '토요산행'을 떠났습니다. 선배 선생님의 함께하자는 권유로 저도 토요산행에 참여했습니다. 그때는 조금은 업무의 연장선처럼 느껴졌습니다. 알고 보니 토요산행은 제가 남원을 걷고 느끼며 알아가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다음으로 남원 생태학교라는 교사모임의 도움이 컸습니다. 남원 생태학교는 생태교육에 관심이 많은 여러 교과의 선생님들이 모인 단체입니다. 생태학교에서는 학생들과 함께 남원을 포함하는 전라북도 전체를 탐방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했습니다. 저에게는 자연지리 답사처럼 느껴졌습니다. 함께했던 여러 선생님의 도움으로 저는 남원의 지리적 의미에 대해서 조금씩 생각의 폭을 넓혀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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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의 실제 수행평가 결과물 |
남원의 지리적 의미를 마인드맵으로 정리하며 7개의 주제를 선정했습니다. 첫째, 남원은 화강암의 차별침식에 의한 침식분지가 나타납니다. 시내에 위치한 전망대카페에서는 남원 분지를 조망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전망대카페까지 오르며 화강암 풍화층을 직접 관찰한 뒤 전망대카페에서 침식분지를 확인하는 활동을 구상했습니다. 둘째, 남원 시내에서 곡성까지에는 요청 변을 따라 자전거도로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자전거도로에서는 자연제방과 배후습지가 나타나는 범람원 지형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제방 뒤 논으로 이용되는 지역에 설치된 양수 펌프를 강조했습니다. 양수 펌프가 있었기에 인공제방을 만들고 이곳을 논으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보 건설과 요천의 수질오염을 확인하는 활동을 계획했습니다. 요천을 따라 여러 개의 보가 놓여 있습니다. 보는 물의 흐름을 느리게 해 부영양화와 같은 수질오염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세 가지 포인트를 안내했습니다. 시내 부분 보에 도착하기 전에 비교적 수질이 양호한 지점, 시내 중심부 가까이에 위치한 보로 수질오염이 가장 심각한 지점, 이후 자연하천 상태로 흐르며 식생이 울창하게 분포하는 지역을 통과해 조금은 수질이 좋아진 지점. 세 곳에서 직접 냄새를 맡고 탁도를 비교하는 활동을 했습니다. 넷째, 소설이 재현된 곳 춘향 남원을 답사하게 했습니다. 남원은 소설 속 인물인 춘향과 관련된 다양한 경관이 재현되어 나타나는 곳입니다. 춘향묘가 대표적입니다. 남원시는 춘향묘를 만들고 매년 춘향제가 시작할 때면 이곳에서 제사를 먼저 지냅니다. 춘향제의 시작을 춘향묘에서 하는 것이지요. 이외에도 월매집, 광한루원, 춘향사당 등 춘향과 관련된 다양한 경관이 나타납니다. 다섯째, 공설시장과 대형마트의 비교를 통해 중심지이론을 적용해보는 활동을 구상했습니다. 학생들은 공설시장 약도를 그려 어디에 어떤 재화를 파는 상점이 있는지를 파악했습니다. 대형마트에서는 제품 코너별로 진열된 물품의 가격을 조사했습니다. 이와 함께 접근성, 주차시설, 청결도 등을 조사하며 공설시장과 대형마트를 비교했습니다. 여섯째, 남원 읍성의 흔적이 남아있는 언어 경관을 찾아보는 활동을 계획했습니다. 남원 시내에는 일제강점기 전까지 읍성이 있었습니다. 한국의 많은 도시가 겪었던 것처럼 남원의 읍성도 헐리고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읍성의 흔적은 가로망에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옛 성문터를 따라 사각형의 도로가 나타납니다. 옛 읍성의 흔적은 언어 경관으로 남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남문로, 동문로, 서문로터리 등 성문의 이름을 딴 지명이 남아있는데 이들 지명을 활용한 서문슈퍼, 동문장식 등의 상점의 간판을 도로를 따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지도에 옛 성문의 흔적을 표시하고 직접 답사를 해 언어 경관을 찾아오는 활동을 주문했습니다. 일곱째, 구룡폭포 하천지형 답사를 계획했습니다. 구룡폭포 등산코스는 왕복 세 시간 정도 필요합니다. 등산로 입구에서 폭포까지 천천히 걸으며 퇴적물의 원마도, 하천의 폭과 경사, 유량을 직접 확인해오는 답사를 계획했습니다. 한 달 정도 시간을 주고 학생들의 수행평가 결과물을 기다렸습니다. 학생들은 제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자신들이 사는 장소에 대해 탐구를 해냈습니다. 몇 학생을 불러 수행평가를 마친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한 학생은 평소 무심코 지나쳤던 남원의 여러 장소를 이번 수행평가를 통해 의미를 알게 되었다고 답을 했습니다. 다른 학생은 교과서를 통해 배웠던 개념을 실제로 확인할 수 있어 좋았다고 답을 했습니다.
<참고>
권정화, 2015, 지리교육학 강의노트, 푸른길
박남기, 2017, 최고의 교수법, 쌤앤파커스
이태우, 2016, 생활세계와 지리교육 ‘남원에 살으리랏다’, 한국지리환경교육학회 동계학술대회 자료집, 42-48
한희경, 2013, ‘장소를 촉매로 한’ 치유의 글쓰기와 지리교육적 함의: ‘나를 키운 장소’를 주제로 한 적용 사례, 대한지리학회지, 48(4), 589-607
O. F. Bollnow, 1963, Mensch und Raum, Kohlhammer: Stuttgart(이기숙 옮김, 2011, 인간과 공간, 에코리브르)
+ 저에게 많은 자극을 주시는 모든 지리 선생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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