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반도 답사보고서 _ 굴포 운하

이준선(2009)에 따르면 굴포운하가 성공하지 못한 원인에는 세 가지가 대표적이다. 첫째, 이곳의 기반암이 경질의 화강암이라 공사가 불가능했다. 둘째, 천수만과 가로림만의 조차가 크고 수심이 얕아 해상교통로 이용에 적합하지 않으며, 활발한 퇴적물 공급으로 니토가 빠르게 쌓여 공사가 쉽지 않았다. 셋째, 당시의 토목 공구였던 오직, 정이, 철추 등으로 이 정도 규모의 토목공사를 하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이준선은 이 세 가지 모두에 의문을 제시한다. 첫째, 태안반도 일대는 과거 지진이 빈번했고 때문에 절리가 발달했다. 절리가 발달한 화강암은 풍화가 빠르게 진행된다. 풍화가 진행된 화강암은 사람이 손으로 만져도 쉽게 부서질 만큼 약한 상태가 된다. 때문에 경질화강암이 노출되어 공사가 어려웠다는 주장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둘째, 천수만과 가로림만의 큰 조차는 오히려 조수의 흐름을 이용해 배의 이동에 도움이 되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얕은 수심도 문제가 되지 않는데 갯벌이 나타나는 지역에서 배의 이동은 갯골을 따라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갯벌로 유명한 순천만에서 유람선이나 고기잡이 어선이 쉽게 출입한다. 이들 배의 항로는 갯골을 따라 그려져 있다. 셋째, 빈약했던 토목공구 또한 사료를 충분히 검토했더니 이 정도 규모의 토목공사였다면 충분히 가능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첫 번째 주장처럼 실제로 이곳이 새프롤라이트 중심의 화강암 풍화층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도구의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낮아질 것이다. 그렇다면 굴포운하의 완공을 막은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이준선은 개인 또는 권력 집단 간 이해관계의 부딪혀 일어난 갈등 때문일 수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세곡선의 운항 과정에서 각종 비리가 만연했는데 새로운 교통로의 형성은 이러한 비리에 빌붙어 살아가던 사람들에게는 불필요한 변화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굴포운하 건설에 대해서 대신들의 반대와 비방이 심했다고 전해진다. 풍수지리 또한 굴포운하 건설 중단의 원인일 수 있다.
풍수지리는 당시 사람들의 자연관이자 하나의 입지론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풍수지리에서는 산을 연속적으로 이어진 하나의 줄기로 파악한다. 백두산에서 시작된 산줄기는 한반도 곳곳으로 흘러간다. 그런데 운하 건설은 이러한 산줄기를 인간 스스로 끊어버리는 행위가 된다. 이전(2011)은 비보적 취락경관을 설명하며 대표적인 비보풍수를 소개한다. 비보풍수는 풍수의 조건이 약한 곳에 인간의 힘으로 변형을 가해 이를 보완하는 행위다. 대표적으로는 나무를 심는 식목과 흙을 채워 산줄기를 보완하는 조산이 있다. 비보풍수가 성행하던 시기에 운하를 통해 풍수의 흐름을 끊어버리는 행위는 당시의 많은 사람에게 반대를 불러왔을 가능성이 크다.
참고
이전, 2011, 촌락지리학, 푸른길
이준선, 2009, 태안반도 ‘가적운하’의 역사지리적 검토, 문화역사지리, 21(3),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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