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춘계정기답사 호남지역 3일차
3일차 첫 답사지는 보성다원
차는 배수가 잘 되는 곳이 산지로 적합한데
이곳은 경사가 가파르다
그런데 바람이 많이 불고 토양이 비옥하지 않아 초기엔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다원 주변으로 삼나무를 심어 바람을 막고
차나무 사이마다 비옥한 흙을 보충하며 다원을 가꿨다고 한다
이건 보성다원 홍보 사진을 다시 찍어온 것...
보성다원은 차가 잘 자라나기에 강수량이 살짝 모자르다..
부족한 수분은 해무에서 건너온 이슬이 채워준다
삼나무 숲은 사진 포인트~
방어를 위해 일부러 출입문을 휘게 만든것 같았다
인도의 메헤랑가르를 다녀온 적이 있다
그곳의 출입구도 코끼리가 들어오지 못하게 둥그런 형태로 복잡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낙안읍성 객사
객사는 임금의 위패를 모시고 있어 읍성 내에서 가장 상징성이 큰 장소이다~
제사를 지내면서 동시에 평소에는 이곳으로 출장을 오는 고위 관직자의 숙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수령의 집무실이였던 동헌
읍성 내에서 실질적인 통치를 위한 역할을 수행했던 곳은 동헌이지만
상징성은 객사가 더 높았다
임금의 위패를 모시고 있기 때문이다
객사에 묵어가는 관료들도 수령보다는 높은 직에 있는 사람이었다
내아의 대청...
남부지방의 무더운 여름을 나기위한 가옥구조
내아는 수령이 거주하는 일종의 관사 같은 곳이다
해설사분이 이 누각이 광한루랑.. 뭐랑.. 묶어서 호남지역 3대 누각이라고 자랑하셨는데...
듣다가 참지 못하고..
"...제가.. 남원에 사는데요... 광한루랑 비교하니 동급으로 놓기엔 조금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라고 괜히 오지랖을 부렸다
지형도인데...
등고선.. 아니 지형을 알아볼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각적 표현도 나타나지 않았다
낙안읍성 전망 좋은 곳에서
낙안읍성은 언제나 아름답다~
이번이 벌써 다섯번째 방문인듯
섬진강과 평사리 들판
토지에서는 평사리가 비옥한 들판으로 묘사되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사실 평사리를 이용할 수 있었던 시기는 일제강점기 부터이다
실제 소설의 배경이 되었던 시기에는 버려진 땅이었다
뭐.. 소설은 허구니까 ㅎㅎ
답사 마지막 코스로 구례의 운조루에 들렀다
사진은 운조루의 안채이다
여자가 생활하는 공간이니 자연스럽게 음식을 담는 항아리가 있다
지금은 이런 공간 분리가 거...의 없지만
100여년 전만 해도 성(sex)에 따른 공간 분리가 아주 당연한 것이었다
금환락지 형태의 명당이라
재물이 들어오는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여기로 모여들어 집을 짓고 살았다는데
그곳이 이제 그냥 논이 되었다
막상 살아보니 ... 그냥 그랬다고 ㅋ
풍수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나도 가끔씩 풍수지리 잘 아냐고 질문을 받는다
교과서에 나온 것처럼
당시 살아가던 조상들의 자연관 정도로 봐주면 될것 같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