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쌤테이블 부안 답사 _ 계화도 간척지

계화도 간척지
 전라북도의 지형은 동부 산지와 서부 평야로 크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서부 평야 지역을 인간이 활용한 역사는 비교적 짧습니다조선 시대 까지만 해도 지금 호남평야라고 부르는 지역 상당 부분은 간석지였습니다호남평야는 일제강점기에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합니다일제는 식량 수탈을 위한 전초기지로 호남평야를 활용합니다간석지를 농토로 바꾸기 위해서는 근대적 관개기술 도입했습니다밀물 때 물이 넘치지 않게 제방을 짓고 여름 장마철에 제방 안에 고인 물을 배출할 양수시설이 설치하며 간석지를 농토로 바꿔나갔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간척지 중 대표적인 곳이 광활면 간척지입니다광활면 간척지는 도로를 따라 가옥이 줄지어 나타나는 열촌‘ 경관이 나타납니다농토와 가옥이 가까워야 농업 생산성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광활면 간척지의 공간 구성에는 효율성의 논리가 주요하게 작용했습니다그런데 간척이 끝난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땅은 염분이 많이 남아 있어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습니다식수까지 구하기 어려워 간척지 내부는 거주에는 가혹한 환경이었습니다그럼에도 열촌이 만들어졌던 것은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 때문입니다간척지에서 일하며 살아갈 조선 사람들의 생활은 우선순위가 아니었습니다.

 계화도 간척지는 해방 후 1차 경제개발계획의 하나인 동진강 종합개발사업으로 만들어졌습니다동진강 종합 개발사업은 단순히 간척지만 개발하는 사업이 아니었습니다동진강은 유량이 적어 개발될 호남평야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에 부족했습니다이를 해결하기 위해 섬진강댐을 건설하고 호수에 저장된 물을 동진강 쪽으로 돌려서 부족한 물을 보충했습니다물길을 돌리는 과정에서 섬진강댐의 낙차를 활용하는 유역변경식발전소인 칠보발전소도 건립했습니다동진강 종합개발사업은 다목적댐유역변경식 발전소도수로간척지관개시설 등을 포함하는 대규모 개발사업이었습니다.

간척지 경계를 따라 건설되었던 계화도 간척촌

 계화도 간척지에는 섬진강댐 건설로 인해 수몰당한 주민들을 이주시켰습니다이주단지는 영농 편의를 위해 간척지 내부에 조성하려 했지만연약한 지반침수 위험 등으로 구릉지를 둔 안전한 곳에 택지를 조성했습니다계화도 간척지의 가옥 배치는 광활면 간척지의 그것과는 다른 모습입니다계화도 간척지는 박정희 정권 시절 하향식 의사결정으로 만들어진 곳입니다그래도 일제강점기의 광활면 간척지에 비하면 주민들의 삶을 고려한 것 같습니다.

간척지 전망대의 기념비




계화면사무소에서 남서쪽으로 5분 거리에 간척지 전망대가 있습니다전망대 앞에는 당시의 상황을 알 수 있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습니다기념비에 적힌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지금 여기 이 준공탑과 정자를 세운 자리는 지난날 조봉산이라 부르던 조그마한 섬이었고 북쪽에 높이 솟은 저 산은 본시 계화도로서 부안고을 백제때 엣이름이 끼쳐 남은 곳이다서해의 조수가 밀려들면 파도소리만 요란하고 조수가 물러나면 아낙네들 조개 줍던 여기가 오늘은 씨 뿌리고 김 매고 벼향기 무르익은 양전옥토로 바뀌어질 줄 어느 뉘가 알았으랴 이것은 박 정희 대통령의 특별분부를 받을어 우리 지식 우리 기술 강인한 의지와 끈기로 불모지 갯벌을 이와같이 개척해 놓은 것이다이 어찌 민족의 자랑스런 업적이 아니겠는가.

눈을 들어 여기 망망한 들판을 바라보라 동쪽에 쌓은 1호 방조제는 9254미터이요 서쪽에 쌓은 2호 방조제는 3596미터요 그 물을 가둔 청호저수지 면적은 447헥타이같이하여 조성된 2741헥타의 농경지에서 증산되는 식량은 미곡 맥류 십만석이 넘거니 여기 정착한 농민들에게 축복이 있을 것이다우리는 우리 국토의 지도 모양을 새로 그려 거기 이 시대 민족행진의 힘찬 모습을 새겨 역사의 증인을 삼아 자손대에 길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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