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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답사보고서_ 7. 도암호의 수질오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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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암댐은 유역변경식 발전소로 남한강수계인 송천을 강릉 남대천으로 돌려 큰 낙차를 활용해 발전을 했다 . 그런데 2001 년 이후 발전방류는 멈춘 상태다 . 강릉지역 주민들의 반발 때문이다 . 도암호의 수질오염이 심해 강릉 남대천 유역에 환경오염 피해가 나타났다 . 강원도 산간지역이라 청정지역일거 같지만 도암호로 흐르는 송천은 수질오염이 심각하다 . 송천이 흐르는 대관령면에는 축산단지 , 골프장 , 농경지등이 여럿 있다 . 특히 여름철 집중 강우가 내릴때면 수많은 오염물질들이 하천에 유입된다 ( 박경훈 외 , 2012)  고랭지농업은 도암호 수질오염을 일으키는 원인 중 하나다 . 이 일대의 고랭지에서는 배추농사가 활발하다 . 그림 20 에 보이듯이 배추는 여름철 경작 기간을 제외하곤 나지 상태로 있어 강수시 토양침식에 취약하다 . 사진은 6 월 말에 촬영되었는데 일기예보상 장마가 불어오기 직전이었다 . 실제로 답사 후 1 주일 뒤 장마가 시작되었다 . 배추의 생육상태는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 빈  공간을 따라 빗방울이 떨어지며 토양침식을 일으킬 것이다 . 동시에 뿌려놓은 비료들도 씻겨 내리며 하천을 따라 도암호로 유입된다 . 박경훈 외 (2011) 에 따르면 안반데기에서는 비료 사용과 농약 투입의 악순환이 지속된다 . 배추밭은 나지상태로 유지되는 기간이 길어 토양 및 양분 유실이 심하다 . 때문에 비료를 많이 투입할 수 밖에 없는데 안개가 끼거나 강수가 있을때면 비료 때문에 병충해 발생이 심하다 . 병충해를 막기 위해 농약을 투입하며 토양과 하천이 오염된다 . 이렇게 오염된 물이 송천을 흘러 도암호로 유입된다 .   안반데기 입구에는 강수시 토사유출을 짐작할 수 있는 미지형이 발달해 있었다. 마치 기후변화에 의한 단구가 만들어지는것처럼 강수시 토사유출로 하곡을 넓게 매웠던 퇴적물들이 건조한 시기에 유량이 적은 하천에 의해 침식되고 있었다. 이러한 미지형은 일반적인 ...

강원 답사보고서_ 6. 안반데기의 고랭지농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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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15 배추농사가 한창인 안반데기  안반데기는 고위평탄면에서 행해지는 고랭지농업의 사례지역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 해발고도 1100 미터 즈음 되는 곳에 경사가 비교적 완만한 구릉이 넓게 펼쳐져있다 . 이곳에선 배추농사가 주로 이뤄지며 듬성듬성 풍력발전기가 힘차게 돌아가고 있다 . 안반데기에서 안반은 떡메를 칠 때 받치는 나무판을 가리키는 단어다 . 산지이지만 비교적 평탄한 이곳 지형을 나타낸 단어인 듯 하다 . 데기는 언덕에서 ‘ 덕 ’ 을 표현하는 강릉 사투리이다 . 떡메를 치는 나무판처럼 평평한 언덕이 이 지역 사람들이 인식한 안반데기이다 . 이곳은 1960 년대까진 가끔씩 들르는 화전민만 거쳐 지나가는 인적 드문 곳이었다 . 1960 년대 들어 화전민 정리사업이 실시되면서 농민들의 정착지로 개발되어 인구가 유입되기 시작했다 . 초기에는 씨감자와 약초를 주로 생산했다고 한다 . 씨감자는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었고 약초는 중국산에 밀려 생산을 중단했다 . 현재는 배추농사가 한창이 다 . 배추는 서늘한 기후에서 잘 자라나는데 1100 터 고지의 안반데기는 배추가 자라나기에 적합하다 ( 김윤미 · 최순호 , 2016) .  안반데기는 고위평탄면의 사례지역으로 자주 소개된다 . 고위평탄면은 지각이 융기하기 이전의 평탄면이 나타나는 지역이다 . 데이비스의 지영윤회사고에 기초한 고위평탄면의 형성과정을 간단히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 판구조론에 따르면 한반도는 과거 지금보다 저위도에 있었다 . 당시 기후는 고온다습했고 풍화 , 침식 , 메스무브먼트라는 지형의 고도를 낮추는 삭박작용이 활발했다 . 이 결과 한반도 대부분은 평탄화 되었다 . 한반도가 지금의 자리에 위치하고 동해가 열리기 시작하면서 받은 압력으로 경동성 요곡운동이 일어났다 . 경동성요곡운동이 결과 융기축이 동쪽에 치우친 태백산맥이 형성되었다 . 고위평탄면은 과거에 평탄했던 지형을 반영한다 . 따라서 고위평탄면은 감입곡류하천 , 하안단구 , 해안단구...

강원 답사보고서_ 5. 라파즈 한라 옥계광산의 생태계 복원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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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2 라파즈한라 시멘트 옥계광산 전경   이우형 선생님이 신경준의 산경표를 소개한 뒤로 백두대간은 한반도를 상징하는 산줄기가 되었다 . 백두대간 개념은 등산 애호가들 사이에서 확대 재생산되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져 받아들여 지고 있다 . 석회암은 한국에서 비교적 널리 분포하는 암석이다(그림 13) . 석탄과 달리 석회암은 노천 상태로 채굴 가능해 경제성이 비교적 높다 . 석회암 산지 곳곳에서 광산이 운영되고 있다 . 그런데 여러 석회광산 중 환경단체의 비판을 유독 많이 받은 광산이 있다 . 라파즈한라의 옥계광산이다 . 옥계광산은 백두대간 능선을 잘라내며 시멘트를 채굴한다 . 백두대간 종주가 유행이던 시절 옥계광산의 채굴 경관은 등산객들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 옥계광산은 대중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고 다른광산들 보다 비판을 더 받았다 . 그림 13 한반도의 석회암 분포  신용철 (2008) 에 따르면 석회암 광산은 시멘트 생산 과정에서 많은 환경오염을 유발한다 . 먼저 원석 채광 및 조쇄 과정에서 석회암을 폭파하고 잘게 부수는 작업을 한다 . 이 과정에서 소음과 비산먼지가 발생해 인근 주민들에게 피해를 준다 . 다음으로 열을 가해 필요한 성분을 추출하는 소성공정에서는 다량의 에너지가 소모된다 . 초기에는 소성공정에는 석탄이 사용되었다 . 석탄은 미세먼지 배출이 심해 최근 들어 더욱 환경문제의 주범으로 인식되고 있다 . 후에는 벙커 C 유 , 폐타이어 , 플라스틱 등이 소성공정의 원료로 사용되었다 . 모두 환경오염물질을 배출해 환경에 악영향을 미친다 . 마지막으로 수송 과정에서는 시멘트의 비산먼지가 다량 발생해 인근에 피해를 끼친다 . 옥계광산에는 이러한 시멘트공업에서 나타나는 환경오염과 백두대간을 잘라냈다는 상징성까지 더해졌다 . 그림 14 옥계광산 복원 계획도  라파즈한라는 환경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과감한 행보를 한다 . 환경단체와 손을 잡고 파괴된 지역을 복원할 계획을 세운다 ....

강원 답사보고서_ 4. 가리왕산 알파인 스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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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0 스키장 시설 해체작업이 한창인 가리왕산 알파인 스키장  가리왕산은 평창동계올림픽 준비 과정에서 환경 이슈로 자주 부각 되었다 . 가리왕산 중봉에는 알파인스키 경기장이 들어섰다 . 가리왕산은 조선시대부터 산삼을 채취하는 산으로 지정되어 일반 백성의 출입을 통제하고 보호받던 산이었다 . 2008 년에는 산림유전자원 보호지역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 가리왕산에는 주목 , 분비나무 , 피나무 , 왕사스래 나무 등의 보존가치가 높은 산림생태계가 형성되어 있다 ( 황인철 . 2018). 3 일 동안의 경기를 위해서 500 년동안 지켜져왔던 가리왕산의 생태계가 파괴되었다 .  전대욱 ⋅ 전진형 (2014) 은 가리왕산 스키장 건설을 둘러싼 논쟁 내용을 정리했다 . 가리왕산 중봉에는 너덜지대의 ‘ 풍혈 ’ 이 있었다 . 풍혈에서는 냉량한 바람이 흘러나와 가리왕산이 위치한 위도와 고도에서는 자라나기 힘든 북방계 식물이 다수 살았다 . 스키장 건설로 풍혈이 파괴되면 아무리 복원사업을 진행한다고 한들 기존 생태계 복원은 불가능했다 . 환경단체는 풍혈과 북방계 식물의 생태계를 강조하며 가리왕산 알파인스키장 건설을 반대했다 . 강원도와 평창 지역주민은 IOC 에서 제시한 활강스키장 조건을 내세우며 가리왕산 개발의 불가피함을 주장했다 . 당시 이들이 주장한 IOC 조건에 따르면 활강스키장은 표고차가 800M 이상 , 평균경사도 17 도 이상 , 슬로프 길이 3000 미터 이상을 만족해야한다 . 강원도와 지역 주민들은 평창 인근에서 이러한 조건을 만족하는 지역은 가리왕산이 유일하다고 이야기했다 . 올림픽 유치 과정에서 평창 인근 만항재나 전북의 무주리조트가 대체지로 떠올랐지만 , 만항재는 표고차 788M 로 IOC 기준에 다소 미흡했고 , 남향이라 눈이 쉽게 녹는다는 이유로 개최지에서 탈락했다 ( 한겨레 , 2011 년 기사 ). 무주리조트는 강원도가 아닌 전라북도였기 때문에 논의 대상이 아니었다 . 많은 논란 끝에 희귀식물 피해를...

강원 답사보고서_ 3. 평창동계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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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9 철거공사가 한창인 평창동계올림픽 주경기장과 홀로 남은 성화대  우여곡절 끝에 평창동계올림픽이 개최되었다 . 최순실 일가와 재벌 , 몇몇 부유층들의 재산 축적의 장으로 활용될뻔했던 평창동계올림픽이 남북평화라는 이슈 아래 여러 가지 잡음이 무마되며 무난하게 마무리되었다 . 평창 동계올림픽은 2011 년에 3 번의 도전 끝에 결정되었다 . 앞에 언급한 몇몇 집단의 이익창출을 목적으로 평창동계올림픽 개최를 설명하기엔 더 많은 설명이 필요하다 . 실제로 평창동계올림픽은 강원도의 숙원사업이었다 . 강원도는 무엇 때문에 평창동계올림픽을 그토록 원했을까 ?  강준만 (2008) 은 지방자치제도에서 그 답을 찾는다 . 수도권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자체는 낙후되어 있고 때문에 재정 상황이 열악하다 . 해당 지역에서 거둬지는 세금만으로 지역 개발정책을 실시 하기엔 부담이 크다 . 그렇다고 지역개발을 등한시하면 지역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 자신이 위치한 지역에서 지속적인 정치 권력을 누리기 위해서는 재원은 부족하지만 지역개발정책을 실시해야하는 딜레마를 해결해야 한다 . 이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올림픽 , 엑스포와 같은 메가이벤트의 유치다 . 국가의 위상을 드높이는 기회라는 표어 아래 중앙정부의 재원을 지방으로 효과적으로 끌어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 박보현 (2010) 은 그람시 (Gramci) 의 헤개모니 개념과 이를 발전시킨 제솝 (Jessop) 의 헤게모니 프로젝트 개념을 빌려 강원도의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노력을 설명한다 .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는 ‘ 민중 - 민족 프로젝트 ’ 의 하나였다 . 강원도의 토착 정치세력은 도민들의 피해의식을 자극했다 . 강원도민들이 공유하는 피해의식은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 첫째 강원도는 적은 유권자 수로 인해 지속적으로 정치적 의사결정에서 소외되어왔다 . 둘째 , 강원도의 천혜의 자연환경은 오히려 산업발달이 저해 요인으로 작용했다 . 특히 수도권에 생활용수를 공급하...

강원 답사보고서_ 2. 카르스트 건천 '창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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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7 창리천에 나타나는 과거 유수의 흔적인 하식애와 보  백룡동굴을 나와 정선 시내로 향하던 중 말라버린 하천을 발견했다 . 지도 애플리케이션에는 하늘색 실선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 처음에는 가물어서 말라버린 작은 하천이 아닐까 생각했다 . 하천바닥에 자라난 식생들은 이곳에 물이 흐르지 않은 기간이 꽤 길었음을 보여주는 듯 했다 . 그런데 그림 7 에 가운데  부분에 선명하게 보이는 하식애 , 가운데 아래 부분에 인간이 만들어 놓은 보를 보면 비교적 최근까지도 물이 꽤 많이 흘렀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 하식애는 창리천의 이 지역이 꽤 오랜시간 침식력을 가진 유수가 있었음을 나타낸다 . 보는 흐르는 물을 가둬놓아 농업용수 , 식수 등으로 사용하기 위한 인공구조물이다 . 아마도 좌측의 민가에서 하천수를 사용하기위해 만든 것 같다 . 보를 통해 비교적 최근까지도 인간이 이용 가능한 수준의 물이 이곳에 흘렀음을 추측할 수 있다 . 그런데 지금은 물이 흐르지 않는다 . 식생을 통해 보아도 이곳은 물이 흐른지 시간이 꽤 되었다 .    강영복 (1998) 은 평창군 미탄면의 고마루 일대를 답사하고 이곳에서 나타나는 카르스트지형을 보고했다 . 고마루 지역은 90 여개의 돌리네 및 우발라가 나타나는 전형적인 카르스트 지역이다 . 이곳을 흐르는 창리천에는 평상시에 물이 거의 흐르지 않는 건천 구역이 중간중간 나타난다 . 창리천 뿐만 아니라 고마루 일대의 동강 지류천들은 대부분 건천이 유로 상에 존재한다 . 이들 하천의 물은 배수구인 포노르에서 사라진다 . 다음 답사 일정이 있어 사진만 찍고 이동했다 . 시간이 조금 더 있었더라면 창리천의 배수구를 찾아서 유로를 따라 답사를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 그림 8 광덕리 마을의 배수 시스템  탁한명 ・ 손일 (2014) 은 정선군의 광덕리의 수령마을에서 포노르를 강수 시 배수구로 활용하는 마을을 소개했다 . 수령마을은 우발라에 위치한 마을로 ...

강원 답사보고서_ 1. 백룡동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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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백룡동굴의 위치  백룡동굴 가는 길은 굽이굽이 멀기도 하다. 평창까지 세 시간 남짓 달려 백룡동굴이 위치한 미탄면에 도착했다. 동굴 근처에 다다르자 갑자기 도로가 1차선으로 좁아졌다. 지도 어플을 켜서 위치를 확인하니 정확하게 가고 있었다. 맞은편에서 오는 차가 있으면 잠시 구석으로 멈춰가며 그림 2에 보이는 좁은 도로를 따라 굽이쳐 흐르는 강을 거슬러 올라 백룡동굴 방문자센터에 도착했다. 간단한 신상기록과 서약서를 작성한 뒤 동굴에 들어갈 탐방복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500m쯤 나루터까지 걸어간 뒤 배를 타고 동굴 입구에 도착했다. 과거에는 절벽을 따라 탐방로를 통해 동굴에 접근했는데 낙석 위험 때문에 지금은 배를 타고 이동한다.  그림 2 백룡동굴 안내센터로 향하는 1차선 도로  백룡동굴은 접근하기 참 어렵다 . 그 덕분이지 백룡동굴은 보존상태가 국내 어느 동굴보다 양호하다 . 서무송 (1998) 에 따르면 백룡동굴은 두 가지 이유에서 접근성이 낮다 . 첫 번째는 앞서 언급한 백룡동굴의 위치 때문이다 . 백룡동굴은 감입곡류하천의 공격부분에 형성된 하식애 중간쯤에 동굴 입구가 있다 . 그림 2 와 같이 굽이쳐 흐르는 하천을 따라 안내센터에 도착한 뒤에도 배를 타야지만 접근할 수 있다 . 두 번째는 동굴 내부의 구조다 . 백룡동굴은 인근 지역 주민들에겐 널리 알려진 장소였다 . 동굴입구에는 조선시대에 거주했던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온돌 유적도 있다 . 동굴은 연중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고 비바람을 피하기에도 유리한 곳이다 . 집을 짓는 기술이 발달하기 전 인류는 동굴 거주를 선호했다 . 그런데 지역주민인 백무룡씨가 ‘ 개구멍 ’ 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동굴 내부의 거대한 공간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  그림 3 의 개구멍 뒤에 있는 공간은 비교적 최근까지 미지의 상태로 있었다 . 사람들에게 알려져 출입이 가능했던 동굴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동굴생성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