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로 시작하는 지리학습, 공정무역 UCC 만들기
먹거리로 시작하는 지리학습, 공정무역 UCC 만들기
공정무역 UCC 만들기는 세계지리를 홍보하는 활동을 구상 중에 만들어진 프로젝트 수업이다. 당시 중학교에서 3년 근무를 마치고 고등학교로 근무지를 옮기게 되었다. 고등학교로 적을 옮기면 세계지리를 가르쳐보고 싶었으나 신임교사는 전임교사가 짜놓은 교육과정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수업하며 맡았던 2학년 학생들에게 3학년 때는 세계지리를 함께 공부하자고 약속을 했다. 세계지리로 수능까지 응시했으면 하는 마음에 제자들에게 세계지리를 살짝 보여주고 싶었다.
세계지리 교과서에 나와 있는 개념을 전달하는 수업으로는 학생들의 관심을 끌기에 부족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학생부종합전형 위주로 바뀌는 대입제도 또한 개념 전달이 아닌 학습자주도 수업의 필요성을 강화했다. 교과 시간 외에 진행되는 교내 프로젝트를 통해 학교생활기록부 근거를 마련해주겠다고 홍보했다. 인지심리학 관점에서도 학습자주도의 수업이 유의미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단순히 읽고 듣기만 하는 활동은 빠르게 망각이 된다. 학생들이 직접 생각을 하고 말이나 글, 행동으로 표현하는 활동이 작업기억에서 장기기억으로 전이를 촉진한다. 최근 많이 언급되는 비쥬얼싱킹, 하브루타, 배움의 공동체, 플립러닝 등은 인지심리학 관점에서 학생들의 능동적인 지식 재구성을 끌어낸다. 어떤 방법으로 프로젝트 수업을 해볼까 고민을 하던 중 중학교 근무 시절 학생들의 반응이 좋았던 공정무역이 먼저 떠올랐다. 공정무역이라는 내용으로 학생들이 공정무역 제품을 판매하는 UCC를 만들고, 다 같이 상영하는 UCC 만들기 축제를 방법으로 선정했다. 생각보다 많은 학생이 모여 자기소개서를 포함한 신청서를 바탕으로 24명의 학생을 선발했다.
Fien은 교실에서 교사가 학생들과 교감에 실패하는 이유를 공적 지리를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학생들의 사적 지리를 무시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공적지리는 지리학자들이 생산한 개념으로 교육과정과 교과서에 제도적으로 공인된 지리개념이다. 사적지리는 학생들의 주관적인 개념으로 일상생활에서 암묵적으로 형성된다. Fien에 따르면 지리교육은 사적지리와 공적지리의 대화를 통해 사적지리의 질적 향상을 도모해야 한다(권정화, 2015). 먹거리는 사적지리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종종 우스갯소리로 식욕이 많은 사람에게 “살기 위해 먹느냐, 먹기 위해 사느냐.”라고 묻곤 한다. 먹거리는 우리 삶에 필수적이다. 그 때문에 학생들은 먹거리를 매일 접한다. 먹거리에 담긴 지리적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 사적지리와 공적지리의 상호작용이 될 수 있다. 지리교과는 이러한 점에서 먹거리와 강하게 연결될 수 있다.
조철기(2017)는 음식 시민성 함양을 위한 지리교육을 강조하며 먹거리와 지리교육의 관계를 설명한다. 먹거리는 교육과정에서 기술가정, 지리에서 주로 다뤄졌다. 기술가정에서는 주로 조리방법과 영양 측면으로 다뤄졌다. 지리에서는 3대 식량 작물, 기호 및 상품 작물 등으로 가치가 포함되지 않은 피상적 개념으로 다뤄지다가 최근에 문화권과 음식의 관계, 음식에서의 환경 이슈, 유전자 조작 등 가치가 포함된 먹거리 개념이 폭넓게 다뤄지고 있다. 세계화는 먹거리와 관련된 시민성에도 영향을 미쳤다. 기존의 전통 식량 체계는 음식의 공간적 맥락이 존재해 소비자는 음식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고 행위를 통해 영향력을 미치기도 쉬웠다. 그런데 세계수준의 생산과 유통, 소비로 대표되는 세계 식량 체계는 소비자를 생산과정에서 무지하게 만들었다. 세계화의 결과 생산자와 소비자가 단절되고 음식의 상품화가 이뤄졌으며 식품산업의 성장과 국가의 책임 회피로 탈정치화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음식 시민성의 함양이 필요하다. 음식 시민성은 대안적 식량 체계의 정착을 통해 실현될 수 있다. 대안적 식량 체계는 음식 생산과 가공, 분배, 소비의 과정에서 지속가능성을 강조한다. 지리교육은 이를 위해서 식량 체계 내에서 노동착취, 동물복지, 가공식품의 영양 문제, 음식 안전과 지속가능성, 건강문제, 사회적으로 공정한 음식 생산 등을 다뤄야 한다.
공정무역에 대한 교육은 음식 시민성을 기르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공정무역은 유통구조를 단순화하고 생산지에 몇 가지 윤리적 장치를 더 해 생산자에게 더욱 많은 이윤이 돌아갈 수 있게 만들어진 무역형태다. 윤리적 장치에는 아동노동 금지, 화학약품 사용 금지, 적정 수준의 임금, 이윤의 생산시설에 재투자 등이 포함된다. 이용균(2014)에 따르면 공정무역은 신자유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했다. 신자유주의를 통해 남북문제가 더욱 심화되었으며, 국가스케일 내에서도 계층에 따른 양극화가 심화되었다. 공정무역은 대화, 투명성, 파트너쉽을 통해 남반구와 북반구 모두에게 긍정적 효과를 나타냈다. 남반구에서는 생산자 소득증가, 노동권 보장, 사회인프라구축, 친환경 생산 증가 등의 가시적인 효과가 있었다. 북반구에서는 윤리적 소비가 확대되었으며 공정무역 운동단체 및 캠페인이 증가했다. 공정무역이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공정무역에 대기업이 진출하며 또 다른 이윤창출의 수단으로 전락하기도 했다. 대기업이 아니더라도 공정무역이 이를 주관하는 단체의 이익을 위해 조직되고 있음을 지적하는 사례도 있다. 그리고 공정무역은 이러한 세계적 스케일의 불균등을 소비자 탓으로 돌리는 논리로 사용될 수도 있다. 나아가 공정무역은 윤리적 소비를 통해 물신화를 제공하여 지나친 소비의 확대를 가져올 수 있다. 마지막으로 공정무역은 남반구와 북반구의 신 종속관계를 불러왔다는 비판도 있다. 대기업이든 공정무역단체든 결국은 선진국에서 기원했으며 남반구의 개발도상국은 선진국의 기호에 맞게 생산 활동을 하게 된다는 비판이다. 그럼에도 지리교육의 관점에서 학생들에게 자신의 윤리적 소비가 바다 건너 멀리 떨어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학습활동은 유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여러 연구자가 지적한 공정무역의 한계를 수업시간에 짚어준다면 균형 잡힌 공정무역 수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공정무역 UCC만들기 수업으로 학생들은 먹거리라는 사적지리를 소재삼아 ‘상품사슬’이라는 공적지리를 학습하게 된다. Coe·Kelly·Yeung(2006)은 “당신의 아침 식사는 어디서 오는가?”라고 질문을 던지며 상품사슬을 설명한다. 예를 들어 스타벅스의 커피 홍보 문구인 “GEOGRAPHY IS A FLAVOR”는 이미지를 통해 원산지를 숨기는 역할을 한다. 나아가 화폐를 통해 소비자와 생산자를 분리하고 사용가치에만 집중하게 해 생산과정에서 어떠한 일이 있는지에 관심을 가지지 않게 한다. 상품사슬의 관점을 통해 최종생산품이 아닌 생산에서 유통과정에 이르기까지 종합적인 안목을 학생들은 습득할 수 있다.
실제 수업은 총 3차시로 이루어졌다. 1차시와 2차시는 실제로 공정무역 관련 활동을 필리핀에서 하고있는 활동가를 학교로 초청했다. 1차시에서는 활동가의 필리핀 바나나농장 체험기를 들었다. 활동가는 기존 바나나와 달리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노동자에게 적정수준의 임금을 지급하는 공정무역 바나나를 소개했다. 이를 통해 정의(Justice)와 평등(Equality)개념을 설명하며 수업을 마무리했다. 2차시에서는 공정무역 제품을 활용해 바나나 쉐이크를 만들어 먹는 활동을 했다. 이때 로컬푸드로 만든 채소로 샐러드도 함께 만들어 먹으며 공정무역이 지향하는 가치와 유사한 로컬푸드 개념도 학습했다. 2차시 수업 마지막에 학생들이 직접 공정무역 제품 판매원이 되어 제품을 홍보하는 UCC를 만들어 올 것을 과제로 부여했다. 학생들은 방과후에 모둠활동을 통해 UCC를 제작했고 3차시에 함께 상영하는 시간을 가졌다. UCC는 User Created Contents의 약자로서, 사용자가 제작한 컨텐츠를 일컫는다. 넓은 범위에서 보면 카페, 블로그, SNS에 게시하는 모든 종류의 게시물을 포함하지만, 현재는 주로 동영상 창작물을 일컫는 용어로 사용된다(이재호·이호, 2008). UCC는 학생들이 직접 결과물을 제작하기에 자기주도적이다. 제작 과정에서 스스로 사고하는 과정을 거치기에 자연스럽게 유의미한 학습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또한 UCC는 여러 등장인물, 촬영자, 소품준비 등 다양한 역할이 부여되기에 협동학습이 일어난다. 협동학습을 통해 학생들은 사회적인 역량을 익힐 수 있다(배지환·김인배, 2013).
---여기까지 자료집 원문---
발표가 끝나고 공정무역이 실제로는 공정하지 못함을 지적하며 비판적 관점에서 공정무역을 다룰 필요가 있다는 조언을 받았다. 박선미(2013)는 지구적 문제에 관한 실천적 참여를 다루는 글에서 현재 학교에서 이뤄지고 있는 공정무역에 대한 교육을 윤리적 소비자 미신에 갇힌 신념을 양산한다고 비판한다. 공정무역은 소비자들에게 연민과 동정에 기초한 소비를 부추기고 있으며 공정무역을 통해 실제로 어떻게 생산자의 삶이 나아지는가에 대해서는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고 있지 않다. 심지어 공정무역을 통해서 생산자들이 얻는 이익은 공정무역이 아닌 커피와 비교해서 큰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더 적은 예도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이용균(2014)의 글 외에도 김병연(2013)은 공정무역의 문제점을 안도감을 통한 공정무역 상품의 물신화, 자본주의 체제 유지에 기여, 여전한 환경파괴, 윤리적 자아 만들기 기획을 통한 판매이익 증대 등으로 제시한다. 사실 이 부분은 PPT를 작성하며 어디까지 넣어야 하나 고민했던 부분이다. 발표 주제가 먹거리를 통한 지리학습을 UCC제작으로 구체화한 사례발표였기에 현행 교육과정 내용을 넘어서는 내용학 부분은 생략하고 넘어가기로 판단하고 실제 발표 때는 간단하게 언급하고 넘어갔다.
공정무역에 관한 내용뿐만이 아니었다. 상품사슬 또한 비슷한 고민을 했다. 학부시절 경제지리학 최신 개론서였던 ‘현대경제지리학 강의’에서는 상품사슬 까지 설명하고 이후 논의는 이러이러한 관점이 있다고 언급하는 선에서 논의를 마친다. 그런데 얼마 전 출간된 '핵심개념으로 배우는 경제지리학’에서는 상품사슬의 한계를 개선한 개념으로 가치사슬을 언급했다. 상품사슬은 생산 네트워크를 생산자주도형과 구매자주도형 두 가지로 구분한다. 그런데 실제 세계에서는 생산자 주도, 구매자 주도 두 가지로 나누기엔 구분히 모호한 경우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생산자주도기업에서조차 핵심 생산 공정을 외주로 돌리는 경우가 종종 나타난다. 니콘디지털이미징은 디지털카메라의 핵심 부품인 이미지센서를 자체설계 후 소니에 외주를 주는 방식으로 카메라를 생산해서 출시해오고 있다. 나아가 이재열(2016)은 상품사슬에 대한 논의가 가치사슬을 넘어 글로벌 생산네트워크(GPN)으로 발달해오고 있음을 밝혔다.
지식의 수명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알고 있는 개념이 누군가에 의해서 수정되고 새로운 진리라고 불리는 명제들이 생산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학교현장에서 교사는 어디까지 들여다보고 수업에 반영해야 할까? 물론 교육과정이라는 방패막이가 있긴 하다. 교육과정에 근거하거나 또는 교과서에 나와 있는 수준까지 가르친다고 말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미 지나버린 개념을 학생들 앞에서 진리인 것처럼, 최신 개념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무조건 최신의 것을 쫓는 것도 조심스럽다. 해당 개념이 학문적으로 논의를 충분히 거치지 않아 교육과정에 들어오기엔 더 많은 합의가 필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래서 교사는 모학문의 성과를 계속 관심있게 찾아보고 끊임없이 공부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수업 시간에 어느 정도까지 말할지 판단할 수 있는 안목이 지리교사의 전문성 중 하나가 아닐까. 발표를 마치고 되돌아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참고
권정화, 2016, 지리교육학 강의노트, 푸른길
김병연, 2013, 윤리적 소비의 세계에서 비판적 지리교육 – 공정무역을 통한 윤리적 시민성 함양 -, 한국지리환경교육학회지, 21(3), 129-145
박선미, 2013, 지구적 문제에 관한 실천적 참여의 의미와 교육 방향 검토 – 공정무역에의 윤리적 소비자 참여의 의미를 중심으로, 한국지리환경교육학회지, 21(2), 69-85
배지환·김현배, 2013, SNS를 이용한 학교현장 제작 UCC의 교육적 활용 사례 연구, 정보교육학회논문지, 17(4), 449-456
이용균, 2014, 공정무역의 가치와 한계 -시장 의존성과 생산자 주변화에 대한 비판을 중심으로-, 한국도시지리학회지, 17(2), 99-117
이재열, 2016, 글로벌 생산네트워크 담론의 진화, 대한지리학회지, 51(5), 667-690
이재호·이호, 2009, 동영상 UCC의 교육적 효과 분석, 정보교육학회논문지, 13(2), 247-254
조철기, 2017, 음식을 매개로 한 지리교육의 새로운 방향, 한국지역지리학회지, 23(3), 626-637
Coe. N., Kelly. N., Yeung. H., 2006, Economic Geography: A Contemporary Introduction, Oxford: Blackwell(안영진·이종호·이원호·남기범 옮김, 2011, 현대 경제지리학 강의, 푸른길)
Aoyama. Y., Murphy. J., Hanson. S., 2015, Key Concepts in Economic Geography, Los Angeles: SAGE(이철우·이원호·이종호·서민철 옮김, 2018, 핵심개념으로 배우는 경제지리학, 푸른길)
위 글은 2018 한국지리환경교육학회 하계 학술대회 자료집에 실린 글을 수정, 보완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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