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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반도 답사보고서 _ 굴포 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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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두리 해안사구로 향하는 길에 잠깐 차를 돌려 굴포운하에 들렀다 . 학부 시절 태안반도 답사를 오면 반드시 코스에 넣지만 , 시간이 부족하면 1 순위로 건너뛰는 답사코스다 . 한국의 서해안은 해안선이 복잡하다 . 조선 시대까지만 해도 화물을 운반하는 주된 교통수단은 배였다 . 태안반도는 삼남 지방의 세곡을 서울로 운반하는 해상교통로의 길목에 위치해있다 . 가로림만과 천수만 사이의 좁은 길목에 운하를 건설한다면 태안반도를 돌아가지 않고 직선으로 가로질러 갈 수 있다 . 그 때문에 이 지역은 예로부터 운하 건설이 수차례 시도되었다 . 그림 3 을 보면 이러한 형태가 다소 극단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 당시 사람들이 인식한 지표 형태에도 이 지역은 운하를 건설하기에 좋은 조건을 지닌 곳이었다 . 그런데 굴포운하는 전 구간이 개통되지 못하고 일부만 완성되어 지금까지 남아있다 . 전체 구간 약 6.8km 중 4km 정도만 공사가 완료되었다 . 4km 구간도 지금은 대부분 농경지로 이용되어 흔적을 찾기 어렵다 . 다행히도 옛 인평교에서는 굴포운하의 흔적과 물이 고여있는 모습도 관찰할 수 있다 . 이곳이 운하였다는 사실을 모르고 방문한다면 그냥 조그마한 하천이겠거니 지나칠 것 같은 모습이다 . 이준선 (2009) 에 따르면 굴포운하가 성공하지 못한 원인에는 세 가지가 대표적이다 . 첫째 , 이곳의 기반암이 경질의 화강암이라 공사가 불가능했다 . 둘째 , 천수만과 가로림만의 조차가 크고 수심이 얕아 해상교통로 이용에 적합하지 않으며 , 활발한 퇴적물 공급으로 니토가 빠르게 쌓여 공사가 쉽지 않았다 . 셋째 , 당시의 토목 공구였던 오직 , 정이 , 철추 등으로 이 정도 규모의 토목공사를 하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 이준선은 이 세 가지 모두에 의문을 제시한다 . 첫째 , 태안반도 일대는 과거 지진이 빈번했고 때문에 절리가 발달했다 . 절리가 발달한 화강암은 풍화가 빠르게 진행된다 . 풍화가 진행된 화강암은 사람이 손으로 만져도 쉽게 부서질 만큼 약한 상태가 ...